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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엔 올레, 일본엔 규슈 올레, 걷고 기도하고 먹어라

일본 소도시 여행 입문자에게 딱! ‘미나미시마바라’

  • Editor. 천소현
  • 입력 2024.02.29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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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도시 여행에 입문하고 싶다면, 미나미시마바라 시를 추천한다. 고즈넉한 소도시에서의 규슈 올레 걷기, 유네스코 문화유산 관람, 돌고래 워칭, 소면 공장 견학은 결코 소소하지 않았다. 소도시야말로 일본을 가장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나가사키현에 속하는 미나미시마바라(南島原市)는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반도 지역이다. 홋카이도 공항에서 3시간 정도 이동하면 화산, 바다, 온천이 있는 시마바라반도에 도착한다. 미나미시마바라는 반도를 구성하는 세 개의 도시(운젠시, 시마바라시, 미나미시마바라시) 중 하나고 인구 4만 명의 소도시다.

소도시 여행은 참 신기하다. 처음엔 ‘관광’에 욕심내지 않고 그냥 ‘살아 보기’로 마음먹는다. 그래도 이자카야에서 닭튀김을 먹다가, 대욕장에서 유리창 너머 바다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지는 것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게 시작이다. 화려하거나 거창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를, 소도시 여행은 알려준다.

●그래! 규슈 올레가 있었지!
이토록 좋은 미나미시마바라 걷기

일본 열도의 남서부에 위치한 나가사키현은 일본과 네덜란드와의 교류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 전에 포르투갈이 있었다. 그들의 무역과 포교가 함께 나가사키의 항구에 도착했다. 미나미시마바라 남쪽의 구치노쓰(구치노츠)항에도 1567년 처음으로 포르투갈의 무역선이 들어왔다. 미나미시마바라의 역사에도 새로운 닻이 내려지는 사건이었다.

460여 년이 지났지만, 구치노쓰항은 여전히 미나미시마바라 여행의 출발점이었다. 올레 걷기가 시작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18개(2023년 6월 기준)의 규슈 올레 코스 중에서 미나미시마바라 코스는 꽤 알찬 편이다. 10.5km를 천천히 걸으며 시의 최남단에 위치한 하야사키 반도를 한 바퀴 돌면 구치노쓰 마을, 산, 밭, 바다, 고목을 모두 섭렵하게 된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이를테면 ‘비너스 미용실(카페)’ 같은 곳이다. 미용실의 기계와 가구를 남긴 채 아늑한 카페로 꾸민 주인의 센스가 대단하다 싶은데, 도쿄에서 이주해 왔다는 하마타 준코 사장님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카페는 일부분일 뿐, 50년 이상 된 목조주택의 2층과 3층은 예술가를 위한 레지던스 작업실이자 소규모 갤러리였다. 올레의 초입이긴 했지만 커피도 마시고, 작품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구보 주조장, 교쿠호지 절, 야쿠모 신사를 기웃거리며 마을 중심부를 벗어나자 대나무숲 길이 노로시야마산(표고 90m) 아래 초록 밭으로 인도했다. 고랑마다 양상추가 가지런하고, 알싸한 파 냄새가 흙냄새와 함께 올라왔다. 인공 저수지인 노다제방 너머는 파란 바다. 안개 낀 바다 건너 희미한 실루엣은 구마모토다. ‘여기구나!’ 싶어지는, 어느 영화의 로케이션 장소였다는 것이 이해될 만큼 기이하게 아름다운 풍경이다.

휴식의 정점은 역시 전망대, 한동안 우거진 나무에 가려져 잊혔었다는 전망대는 행복의 종 너머 세즈메자키 등대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에서 길은 해안으로 내려와 방파제와 평행을 이루기 시작했다. 올레 코스의 후반 구간은 볼수록 제주를 연상시킨다. 현무암과 붉은 송이, 주상절리로 구성된 해안 지형이 꽤 드라마틱하다. 430만 년 전 해저 화산의 분화로 시마바라반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장소도 현무암으로 굳어져 있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이기도 하다.

인근에는 개인 주택의 빈방을 올레꾼들을 위한 휴게소로 개방한 집이 있다. 화장실은 무료, 목을 축이라고 냉장고엔 음료수를 무인상점처럼 넣어두셨다. 방명록에 감사 인사를 적지 않을 수 없다. 방문자가 퍽 줄었던 코로나 기간에도 올레길을 꾸준히 가꾸어 온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수령 300년이 넘었다는 용나무 군락을 만나러 갔다. 신령스럽기까지 한 모습이다. 넓고 깊은 나무 그늘에 서 있자니 새로운 힘이 솟았지만, 비가 거세졌다. 완주라는 숙제를 남겨 두기로 했다.

▶규슈 올레 미나미시마바라 코스
거리: 10.5km
소요 시간: 3~4시간
난이도: 중



●그들이 잠복한 이유
기리시탄 왕국의 계승자들

하라성터 방문은 아리마 크리스천 유산 기념관을 관람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450여 년 전에 미나미시마바라가 기독교 포교와 남만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했던 과정을 알아야 오늘날, 이 허허벌판의 성터가 왜 유네스코 문화유산인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레 코스의 시작점인 구치노쓰항을 기억하는가? 1563년 포르투갈의 선교사 루이스 데 알메이다가 구치노쓰항에 도착했다. 그의 포교 활동으로 당시의 영주(다이묘) 아리마 하루노부가 세례를 받으면서 미나미시마바라는 빠르게 신앙을 받아들여 ‘기리시탄 왕국’으로 부상했다. 기리시탄은 크리스천을 뜻하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했다.

1580년에는 순찰사 발리야노가 소신학교(세미나리오)를 세우고 신학생 양성을 시작했고, 1기생 중 4명의 소년을 선발해 로마에 파견(텐쇼오 유럽파견 사절)하는 등 서양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접촉했다.

하지만 곧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서구의 세력 확장을 우려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7년 선교사 추방을 명령했고 1596년 스페인 상선(산펠리페호 사건)과의 충돌을 계기로 신도들을 처형하기 시작했다. 전격적인 금교령이 내려진 1614년부터 일본 내 모든 포교 활동이 금지되고, 많은 기리시탄들이 목숨을 잃었다.

종교 탄압에 더해진 영부들의 폭정은 일본 역사상 가장 큰 민중 봉기로 기록될 ‘시마바라-아마쿠사의 난(島原・天草一揆)’을 야기했다. 1637년 10월, 마지막 거점이 된 하라성에 모인 3만7,000여 명의 반군은 12만 명의 막부군 끝까지 대항했다. 석 달 가까이 버텼던 하라성의 봉기가 전멸로 진압되자 두 개의 문이 닫혔다. 남은 기리시탄들은 신앙을 숨긴 채 위장하며 살아가야 했다. 이른바 ‘잠복((潛伏, 가쿠레)’의 시간이다. 시마바라-아마쿠사의 난에 놀란 일본 정부는 쇄국으로 나라의 문을 잠갔다.

금교령은 260년간 지속되었는데, 기적은 이 기간에 일어났다. 잠복 기리시탄(잠복 천주교인)들은 성모상을 불상으로 위장하고, 낙도로 이주해 비밀스럽게 공동체를 유지하고, 기도문은 구전으로 전하는 방식으로 신앙을 계승해 갔다. 그렇게 잠복했던 기리시탄들이 다시 나타난 것은 1865년 나가사키 오오우라 천주당의 헌당 후였다. 조금씩 쇄국이 풀리면서 돌아온 외국인 선교사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른바 ‘신도 발견’이다. 1873년 금교령이 철폐되면서. 기리시탄의 잠복도 끝났다.

잠복 기리시탄이 나가사키와 아마쿠사 곳곳에 남긴 12개 구성 유산은 일본 정부의 노력 끝에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나가사키와 아마쿠사 지방의 잠복 기리시탄 관련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미나미시마바라에서는 ‘하라성터’가 그 구성 유산에 속한다.

하라성은 봉기 이후 철저히 파괴되어 350년 동안 버려져 있었다. 1992년에야 발굴이 시작되어 황금십자가, 묵주알, 펜던트 등 다수의 신앙 유적과 인골이 발견되었고, 석축 잔해, 예수회 기록 등을 근거로 성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있다.

아리마 크리스천 유산 기념관을 성실히 관람한 후라면 빈 성터에서도 많은 것들이 보인다. 포르투갈이 전해 준 화승총과 화약을 얻기 위해 개종도 마다하지 않았던 영주들, 폭정에 신앙으로 맞선 민초들의 희비가 교차한다.

하라성의 영주 하루노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시로 임진왜란에 출병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하라성 축조를 위한 돌쌓기 기술을 배웠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적막한 옛 성터의 기억을 좇았을 뿐인데 일본 역사드라마를 정주행한 느낌. 그런 류의 드라마에 단골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아마쿠사 시로 총대장의 동상이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불과 16세의 나이로 봉기군을 지휘했다는 전설의 영웅이다. 그의 간절한 기도가 지금도 많은 곳에 필요하다.


●아주 특별한 성모상
마리아 관음상

“성모상은 어디에 있나요?” 160년 전 잠복 기리시탄들이 나가사키의 오오우라 천주당에 와서 던진 질문이다. 길었던 박해 속에서도 성모상을 불상으로 위장해서 간직했던 잠복 기리시탄들에게 성모상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긴 세월이 지나 올여름에 미나미시마바라에 아주 특별한 성모상이 공개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 현장에 먼저 갔다.

공사 중인 건물의 임시 출입구로 들어갔지만, 성모상은 보이지 않았다. “성모상은 어디에 있나요?” 질문이 하려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키가 9.5m에 달하는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은 채 온화하게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전신을 보려면 뒤로 멀찍이 물러서야 했다.

세계 최대 규모라는 목조 성모상은 한 조각가의 40년 노력으로 탄생했다.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에 사는 조각가 오야마츠 에이지(Oyamatsu Eiji, 90세)씨는 하라성터에서 희생된 영혼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수령 300년의 통나무(녹나무)를 마련해 1981년부터 성모상 제작을 시작했다. 위령탑 하나 없는 하라성터의 쓸쓸함이 작가의 가슴을 울린 것이다. 오야마츠씨는 완성된 성모상을 미나미시마바라시에 기증하기로 했지만, 운송과 설치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이 모금으로 힘을 보태면서 2022년에 성모상을 무사히 운반해 왔다.

성모상을 안치할 건물이 완성되는 대로 대중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이름은 잠복 기리시탄을 기리는 뜻에서 하라성의 마리아・관음으로 지었다. 주민 해설사는 마리아상이기도 하고, 관음상이기도 한 이 작품을, 종교를 초월한 평화와 사랑의 상징으로 봐 달라고 당부했다.


●숨통이 탁 트이는
돌고래 와칭

확률 99%. 이 수치를 의심하는, 믿음이 약한 자에게도 골고루 은혜로운 ‘와칭’의 기회를 주는 너그러운 곳이 미나미시마바라 앞바다다. 3일 내내 날이 흐렸던 아쉬움을 한방에 상쇄할 만큼 많은 돌고래 떼의 출현. 300여 마리로 추정되는 이 해역 돌고래 무리가 총출동한 듯한 장관이었다.

수면으로 뛰어오른 돌고래가 물줄기를 뿜으며 호흡을 터뜨리는 순간, 신기하게도 내 숨통이 함께 탁 트였다. 호흡을 위해 반드시 수면으로 올라와야 하는 돌고래의 특성상 관찰 확률이 당연히 높지만 이날 1시간 동안 조우한 돌고래 떼의 규모는 현지인에게도 드문 경험이라고 했다.

처음엔 다들 흥분해서 영상을 찍느라 바빴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경이로움에 휩싸여 돌고래들의 힘찬 점프를 바라볼 뿐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안개에 휩싸인 운젠다케의 능선이 돌고래의 등으로 보였다.

●불지 않는 국수가 있다고요?
시마바라 테노베 소면 공장 견학

시마바라의 대표 특산품은 전통 수연 소면이다. 시마바라는 일본에서 소면 생산량으로 2위다. 국수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선입견이 깨진 이유는 이미 한국에서 이 소면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도 잘 불지 않고, 탱탱한 면발이 유지되는 국수다. 비결은 반죽을 길게 늘이는 수연(手延, 테노베)이라고 했다.

 

위생복을 갖추고 소면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기계음을 배경 삼아 반죽에서 뽑힌 면발이 연필 굵기에서 우동 굵기로 변하고 있었다. 쇠막대에 지그재그로 걸어서 쭉 당기면 직경이 5mm씩 늘어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날씬한 소면이 된다.

예전에는 전부가 수작업이었지만, 지금은 반반이다. 면을 꼬고 일정한 장력으로 늘리는 일은 기계의 몫이지만 사람의 손이 줄곧 곁을 떠나지 않는다. 반나절이면 완성되는 기계 소면에 비해 수연 소면은 작업만 13시간으로 소요되고(그래서 이틀에 걸쳐 만들게 된다)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시마바라 테노베 소면은 시마바라소면협회를 통해 유통되는데, 한국에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1인분씩 깔끔하게 소분되어 있고, 잘 불지 않아서 캠핑 갈 때 라면 대신 애용 중이다.


글·사진 = 천소현,  취재협조 일본 나가사키현 미나미시마바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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